조민호
*사과를 깎으며*
사과를 깍는다
때깔 좋은 열매를 손으로 돌려본다
한 번의 칼 놀림으로 조심스럽게
깍아 나아간다
나는 깎으면서 환상에 빠져들었다
얇은 곁옷을 벗겨내고
속살을 보고싶었다
흔들리며 껍질이 바닥으로 떨어진다
허울을 벗기고 난 후에도
모든 것 숨김없이 보일 수 있는용기
나는 가리우고 살아가지 않는가
겉옷을 벗으면 앙상한 뼈만 나열되고
발자국이 찍힌 손바닥은 주름져 있다
껍질이 쓰레기통에 들어간다
쓸모없는 것들이 담긴 휴지통
그 속에서 때깔 좋은 껍질은
나의 시간의 흔적을
용서로 감싸고 있다
사과는 씨방속
신생의 꿈을 남기고
마지막 까지 탐스러움을
가지런히 쟁반에 눕히고 있다